“글쎄, 모르겠어. - 내 추측엔 여기선 우리 모두 고체가(solid) 되는 거 같아.” 그 신사는 답하면서, 천천히 그를 돌아보며, 사려 깊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의 입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그 웃음은 두 개의 주름을 만들어, 박쥐가 날갯짓을 하는 양, 그 어떤 쪽이 아니더라도, 매우 긴, 한 쌍의, 식인종의 이를 드러내었다.(제임스 1966: 41)
이런 이미지는 친숙한 것이다. 헨리 제임스의 1998년 소설, <보스턴인 The Vostonians>의 인용구에서, ‘그 신사’, ‘그 최면술사’ 새라 테런트의 정체는 뱀파이어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테런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수식어구를 통해 은유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그가 우리에게 “테렌트는 문자 그대로 뱀파이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 테런트는 낮시간 동안 목관에서 흙을 덮고 잠들지 않는다. 베레나의 빈혈증이 진짜 그가 그녀를 물어서 생긴 것도 아니다. 거듭 말해, 이 책에서 뱀파이어리즘 Vampirism은 은유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착취적 가족성과 상업적 관계를 상징하는 ‘메타포’로 말이다. 테렌트 역시 뱀파이어 같을(vampire-like) 뿐.
헨리 제임스는 생전에 미신적 소재들을 많이 다뤘다. (<The Turn of Screw>, <Aspern Papers> <The Real Thing>, <The Sacred Fount> 등등의 소설에서 확인 가능.) 그의 이러한 작품 성향은 제임스 B. 트윗첼(James B. Twitchell)의 19세기 뱀파이어 문학(<The Living Dead>)을 연구하면서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트윗첼은 책 <The Living Dead>을 통해서 19세기 문학(예를 들면 '늙은 수부의 노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과 같은 시)을 뱀파이어 전설의 기원으로 해석하는 등 뱀파이어리즘을 재치 있게 해석낸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독창성에도 불구, 약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가 어떤 텍스트에서건 “피를 주고받기만 하면 the interchange of energe" 뱀파이어로 간주하는 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수사적 형태마저도 그는 뱀파이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가 ‘뱀파이어리즘’을 다룰 때 주의해야할 점은 뱀파이어가 꼭 문학에서의 ‘은유’나 ‘상징(체)’로 사용되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뱀파이어의 어떤 부분들은 상징적 유연성과 적용성을 지니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녀왔다. 뱀파이어는 1) 질병, 페스트, (질병의) 침범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2) 식민주의나 국가주의의 상징으로 다뤄지기도 했으며(뱀파이어와 국가주의자들은 “피와 흙 blood and soil"이라는 수사학,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나), 3) 프로이드 식으로 독해하면, 젠더-관계, 섹슈얼리티, 성의 억압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4) 또한 뱀파이어는 때때로 계급관계를 의미하며, 귀족정치의 구현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유명한 맑스, 뱀파이어리즘을 자본주의의 “피를 빠는 bloodsucking” 과정으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도 뱀파이어는 어떤 착취적인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헨리 제임스의 소설은 일련의 친숙한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테넌트를 뱀파이어인 양 묘사하고 있다. 송곳니, 박쥐날개, 혹은 망투(인용구에서는 ‘waterproof') 등의, 제임스 독자들로부터 지금 우리 모두가 친숙한 그런 이미지들을 사용해서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이미지들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 소설에 등장하는 카운트 드라큘라(Count Dracula, 소설 속 뱀파이어 캐릭터 이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데, 실제 제임스의 소설 <보스턴인>(1886)은 스토커의 소설보다 11년이나 일찍 출간됐었다는 것이다.
실제 뱀파이어 메타포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있기 전) 19세기, 혹은 더 일찍부터 존재했던 뱀파이어소설들과 민간전승의 ‘라이브러리’를 위에 “구축되어왔던” 것이다. 일례로,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는 인상 깊은 구절로 시작하는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1848)에도 뱀파이어는 등장한다. 이 선언에서 자본(Das Kapital)은 노동을 착취하는 뱀파이어로 묘사된다.
“자본은 죽은 노동, 마치 뱀파이어처럼, 살아있는 노동자의 피를 빨아댐으로써 생존하고, 생존할수록, 피를 더 빨아댄다” “노동일의 연장은 (중략) 오로지 노동자의 피를 빨아대는 뱀파이어의 갈증을 조금 더 가시게 할 뿐이다”(맑스 1983: 203)
착취적인 계급 관계를 묘사하며, 맑스는 자본, 혹은 자본가를 '루마니아 봉건귀족 최상층 Wallachian Boyar’, '뱀파이어 리더 지도자 Vlad the Impaler’ 로 묘사한다. 이는 당시 뱀파이어에 대한 사회통념과 무관하지 않다. 1932년 즈음, 한 남성잡지에는 동유럽 안에서 뱀파이어 담론이 유행이 번지는 것을 보도하는 통신원글이 실린 바 있다.
... 동유럽에서부터 유래한 뱀파이어는... 알레고리컬한 스타일 Allegorical Style 로 언제나 유명하다. 헝가리의 주들은 터키와 독일에 복종하고 있는데, 그들의 불평을 감추고 복종하라 하는 나쁜 손에 의해 다뤄지고 있다. 뱀파이어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댐으로써 그들을 죽인다고 알려져 있다. 탐욕스러운 총리 ravenous Minister는 거머리, 흡혈귀와 비교되고 있는 실정으로....
뱀파이어리즘을 묘사할 때 따르는 이런 ‘무게 있는(다양하여 무게감이 큰)’ 은유법 사용은 뱀파이어에 대한 ‘조리 있는(논리적인)’ 역사를 제공하기 힘들게 한다. (사람들이 사용한) 뱀파이어의 뜻은 너무나 다양했고, 너무나 본질적으로 달랐다. 니나 오에바흐(Nina Auerbach)가 지적한 것처럼, “뱀파이어들은 다른 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아웃사이더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차이점들은 표면상의 유사성들보다 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도어정책 door policy’을 작동시켜, 이런 비유적인 뱀파이어들보다는 “실재” 뱀파이어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뱀파이어들의 은유적인 뜻들을 해체하고(tease out), 그들의 송곳니가 내게 보여준 ‘이후’의 분석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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